미국은 동맹국과 전략적 경쟁국에 대한 정책 기조를 재조정하면서 국제 통상 환경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미·중 기술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워싱턴은 EU, 캐나다, 영국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는지 여부를 심사하는 새로운 통상 조사를 개시했다. 이러한 다층적 감시 움직임은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 집행을 일시적 조치가 아닌 경제정책의 구조적 특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노동 기준 보호라는 명분은 정당한 측면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다국적 기업의 준수 비용과 규제 마찰을 증가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공급망 혼란은 이미 주요 생산업체들에 구체적인 비용 압박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정학적 단편화에 민감한 한국 IT 업계 대형사들은 지속되는 공급망 문제 속에서 생산 원가 상승에 직면해 있다. 제조업체들이 팬데믹 이후 공급망 재편에 여전히 적응 중인 상황에서 새로운 통상 장벽까지 마주하게 되면서 기업들은 규제 대응과 공급망 다변화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지정학적 위험이 경제 전망에 또 다른 불확실성 요소를 더하고 있다. 이란의 이스라엘에 대한 호르무즈 해협 관련 발언 강화와 미국의 추가 이란 제재 가능성 신호는 에너지 시장 교란의 우려를 낳고 있다. 중동 정세가 악화될 경우 국제유가와 해상 보험료 상승이 연쇄적으로 파급되어 전 세계 인플레이션 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미 압박을 받고 있는 반도체와 기술 산업은 에너지 비용 충격으로 인한 추가 악재에 노출될 것이다.
현재의 흐름은 세계 경제가 서로 경쟁하는 블록으로 분화되면서 통상과 기술 이전의 장벽이 두터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 제한, 노동 준수 심사, 에너지 제재 등 여러 정책 변화가 점진적이 아닌 동시에 추진되면서 기업과 투자자, 정책 담당자들이 급변하는 규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조정 시간이 압박되고 있다.
시장과 정책 담당자들에게 이러한 움직임은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투자자들은 특히 반도체, 에너지, 다지역 노출 다국적 소비재 부문에서 변동성 확대에 대비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공급망 단편화로 인한 구조적 인플레이션 압력이 특정 부문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통상 마찰과 투자 위축으로 인한 성장 둔화는 보다 완화적 정책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적·통상 긴장이 글로벌 경제의 구조적 특징으로 고착되면서 정책 조정을 위한 창구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